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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배경
    The french philosopher Paul Ricoeur argues, history is about “TRUTH” whereas memory is about “FAITHFULNESS” to what ought to be remembered, what can be forgotten, what might be forgiven. Hence, with Rocoeur’s help we have to take in account that the function of the memorial, is above all, to raise historical consciousness. The right balance between remembering, forgetting and forgiving is thus the main challenge that the architect/artist has to face when designing a memorial. _Nelson Mota

    프랑스 현대 철학자 뽈 리꾸르(1913-2005)는 “과거사에 대한 기념은 사람들이 망각할 수도 있고 용서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반드시 잊지말고 기억하자는 신실한 믿음에 근거를 두고 있는 반면 역사는 오로지 사실에만 근거를 두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뽈 리꾸르의 말을 빌리자면 기념물에 대한 주 기능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무엇보다도 역사적 인식을 먼저 떠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건축가와 예술가는 어떠한 공간이나 기념물을 디자인하거나 제작할 때 기억과 망각 그리고 용서와 화해사이에서 올바른 균형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_Nelson Mota(포르투갈 건축가)
    지나간 역사 속에서 인류는 백년의 평화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다간 약 1000억명의 세계 인류 모두는 그 시대의 전쟁을 겪었습니다. 전쟁은 사람들로부터 젊음과 목숨을 바치게 하고 가족들에게 혼란과 함께 지울 수 없는 슬픔의 상처를 남겼습니다. 공동체가 누려왔던 일상의 평화와 도덕성을 단번에 무너뜨리고 공포와 광기의 시간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특히 한 국가의 같은 지역에서 같은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던 민족 간의 내전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Thukydides)가 몸소 체험하고 저술한 펠로포네소스 전생사(A history of Peloponnesian War)에서 이야기 하고 있듯이 그 상처에서 흘러 넘친 피는 몇 세기가 지나가도 마르지 않는 일도 있었습니다. 동족상잔의 내전 폐해는 공동체의 해체를 넘어 국가의 해체와 소멸까지도 이르게 되는 경우를 인류는 많은 역사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지난 20세기의 역사에서도 내전의 비극은 스페인, 한국, 베트남과 그리고 유고와 예멘지역에서 되풀이 되었습니다. 최근까지 시리아와 예멘은 이데올로기와 종교적 신념의 차이를 서로 포용하지 못한 채 상대에 대한 극단적 폭압과 내전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5년, 일본제국주의 강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한민국을 수립한지 2년 만에 한반도에서 발발한 전쟁은 짧은 기간 최대의 인명피해를 세계사에 기록한 내전입니다. 남과 북의 내전은 세계를 양분한 냉전체제의 대리전까지 치르게 되는 국제전으로 비화되며 확전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드높은 이상을 지니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나라 고려(高麗 /KOREA)의 땅은 3년 동안 처참하게 파괴 되었습니다. 남북한 22만㎢ 밖에 되지 않는 한반도 전체에 2차 세계대전기간 유럽 땅에 뿌려진 공습 투하량의 1.4배가 쏟아졌습니다. 세계대전을 한 번 더 치를 만큼의 폭탄을 국지전을 통해 처리하는 재래식 무기의 종말처리장으로 변하였던 것입니다. 한국의 모든 산들은 아름다운 산하를 만들고 있던 나무들은 물론이고 풀뿌리조차 남아나지 않은 민둥산이 되어버렸습니다. 북측 민간인 희생자 150만 명 중 약90%는 대부분 네이팜탄 공습으로 인한 소사자와 댐 파괴로 인한 익사자들인 반면 남측 50만 민간 희생자들 중 약30만 명은 놀랍게도 군경과 적대적 민간인들에 의한 대량 학살로 죽어갔습니다.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남쪽 진영은 보도연맹가입경력자, 북측포로, 북측점령기의 부역자 그리고 15년형 이상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죄수들을 처형하였습니다. 좌익의 꼬리표가 붙은 사람들은 전쟁 발발 직후부터 예비검속의 미명하의 전격적으로 집단 처형을 당하였습니다. 전쟁기간 내내 이러한 일들은 남북한 전역에서 자행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은 1000만명의 이산가족이 생겨났고 전쟁난민이 500만에 달하지만 이제는 잊혀진 전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대전 동구청 곤룡 골에서 학살당한 수천명이상의 민간인들은 한국전쟁 발발 3일 후부터 10일 동안 어떤 재판 절차도 없이 단기간에 집단처형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한밤중에 집과 감옥에서 불려나와 영문도 모른 채 집단 총살형에 처해졌던 것입니다. 그동안 이러한 사실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도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이 사실을 직시하고 국가의 공권력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기까지 50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사업을 기리기 위해 “진실과 화해의 숲” 조성사업이 국제 설계 공모를 하기까지 20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였습니다.
    2005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가 생겨나 활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간 이 감추고 싶은 오래된 숙제는 이 땅의 비극이 태동 할 때부터 안고 있는 유전병처럼 좌우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념에 영향 받으며 그 해결의 길 또한 점점 멀어지고 희미해져 갔습니다. 2020년 죽은 자의 원과 살아남은 자의 한들이 이름 없는 산과 계곡사이에 묻혀 봉인된지 70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보이지 않는 손길-하늘의 도움과 살아남은 가족들의 염원으로 망각의 시간으로 사라지기 직전 다행스럽게도 침묵의 봉인을 풀고 진실과 화해의 숲으로 만드는 첫 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무릇 건축가(조경가)들은 역사와 마주하면서 오랜 시간 끊임없이 불어 왔던 바람의 손길로 이 땅과 계곡의 만든 세월들을 감지해내야 할 것입니다. 시간이 만든 이 땅을 터전으로 살아온 중첩된 삶과 전화 속에 사라진 젊음과 빛나던 이상, 그리고 땅속깊이 침잠되어 잠들어 버린 슬픈 이야기들의 봉인을 풀어 전쟁이 남긴 비극을 교훈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기억조차하기 싫은 이야기들이 다시 살아나 후세에 길이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의 장으로 부활 시켜야합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해에 태어난 나는 진실과 화해의 숲 조성사업을 위한 정부위원회의 자문위원으로 초창기부터 참여하였고, 이제 사업 총괄기획가(MA)로서의 역할을 기꺼이 맡았습니다. 나는 이 비극적인 일의 단초를 제공해온 전쟁 범죄와 학살에 원인을 제공했던 저쪽과 이쪽의 극단적 편 가르기가 지구상에서 사라지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내가 태어난 해에 강제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죽은 자들의 원혼들이 여러분들이 조성하는 아름다운 진실의 역사공원에서 평안한 안식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끝으로 어느 날 갑자기 한밤중에 사라져버린 가족을 가슴속에 묻고 평생을 살아온 살아남은 가족들이 여러분들이 만드는 훌륭한 화해의 숲에서 그리운 옛 얼굴들을 새로운 기억으로 다시 만나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뜻깊은 사업에 동참해주시는 세상의 건축가/조경가들에게 깊은 감사와 함께 좋은 결실이 맺어지도록 마음을 다하여 성원을 보내드립니다.
    총괄기획가 김영섭
    02발굴현장사진
    03처형당시사진
    04관련영상